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갈리아 전쟁 (문단 편집) === 제1차 브리타니아 원정 === 게르만족의 영토 침입이 군사적인 전과로 이어지지 않자 카이사르는 지금의 영국인 브리타니아 침략을 구상했다. 카이사르가 브리타니아 원정을 하고자 한 이유는 브리타니아가 그동안 로마인들에게 완전히 알려지지 않은 미지의 땅이라는 점에서 라인 강 도하를 능가하는 선전효과가 있으리라 판단한 듯하다. 그는 지금의 도버 해협이 가장 건너기에 적합한 지형임을 파악하고 이 해협의 해안가에 있는 모리니족의 영토를 거점으로 삼았다. 그 뒤 화물선을 모아 일단 2개 군단과 함께 출항했다. 도착한 날은 기원전 55년 8월 26일이었다.[* 훗날 [[윈스턴 처칠]]은 이 날을 언급하며 '''[[대영제국]]의 역사가 시작된 날'''이라고 평가했다.] 브리타니아의 민족들은 병력을 모아 로마군의 함대가 보이는 해안가를 따라 이동하며 상륙을 저지하고자 했다. 적당한 해안을 발견한 카이사르는 소수의 병력을 보내 브리타니아군과 격렬한 전투를 벌였고 그 뒤 본대를 작은 배에 나눠 태운 뒤 잇따라 상륙시키자 브리타니아군은 마침내 패배하여 달아났다. 상륙이 성공한 뒤 카이사르는 그들에게 볼모를 요구했고 약속을 받아냈다. 목적을 달성했다고 판단한 카이사르는 갈리아로 되돌아가기로 하고 배를 항구에 정박시켰다. 그런데 조수의 차이를 정확하게 계산하지 못해 늘어난 바닷물로 인해 많은 배가 난파되었다. 궁지에 몰린 로마군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배를 수리했지만 이 소식을 알아낸 브리타니아군이 로마군을 공격하기로 결정했다. 가장 먼저 곡물 조달을 위해 나갔던 7군단이 공격을 받았고 카이사르는 직접 이들에게 합류하여 적을 격파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대군을 이끌고 나타난 브리타니아군이 카이사르의 본영을 공격했고, 로마군은 또다시 이를 격파했다. 두 번의 승리로 브리타니아와 강화를 맺은 카이사르는 수리가 완료된 배와 함께 갈리아로 귀환했다.('''[[카이사르의 1차 브리타니아 원정]]''')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